2026년 8월 2일
Econix Research
에스티로더의 레너드 로더 회장이 9·11 테러 직후 자사 립스틱 매출이 늘었다고 말한 것이 출발점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언론이 다시 꺼내면서 립스틱 지수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졌다
2008년에는 립스틱 매출이 줄고 파운데이션이 늘었으며 립글로스는 14% 감소했다. 2020년 4월 미국 프레스티지 립 컬러 매출은 전년 대비 75% 줄었고 그 수요는 아이 메이크업으로 옮겨갔다
불황을 떠올리게 하는 자극을 받으면 외모를 가꾸는 제품에 대한 구매 욕구가 늘어난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지출의 배분이 바뀐다는 내용이며, 매출로 경기를 예고한다는 주장과는 다르다
서카나 집계로 미국 뷰티 소매 매출은 프레스티지 81억달러로 6%, 매스 181억달러로 7% 늘었다. 메이크업이 가장 부진한 카테고리였는데도 립 트리트먼트와 립라이너는 금액과 수량이 함께 늘었다
경기가 나빠지면 립스틱이 잘 팔린다는 말이 있다. 국내에서는 립스틱 효과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쓰이는데, 큰 지출을 줄이는 대신 값이 싼 사치품으로 기분을 달랜다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이 주장은 판매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는 형태여서 여러 차례 검증 대상이 됐다.
에스티로더의 레너드 로더 회장이 9·11 테러 직후 자사 립스틱 매출이 늘었다고 말한 것이 출발점이다. 이 관찰에 립스틱 지수라는 이름이 붙어 널리 퍼진 시점은 2008년 금융위기 때였고, 미국 립스틱 매출이 2001년 4분기에 11% 늘었다는 수치가 함께 인용됐다. 대공황 시기에 화장품 매출이 25% 증가했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서 덧붙는다.
다만 2001년의 증가분을 경기 탓으로 돌리기 어렵다는 반론이 나중에 나왔다. 그해는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셀러브리티가 만든 화장품 브랜드가 잇따라 나오면서 색조 시장 자체가 커지던 시기였고, 소비심리 지표도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립스틱 지수라는 말이 가장 많이 인용된 2008년의 실제 판매 데이터는 주장과 어긋났다.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그해 립스틱 매출은 줄어든 반면 파운데이션 매출이 늘었고, 립글로스는 14% 감소했다. 립스틱 지수 대신 리퀴드 파운데이션 지수라고 불러야 한다는 말이 업계에서 나온 것도 이때다.
2020년에는 차이가 더 크게 났다. NPD 집계로 미국 프레스티지 립 컬러 매출은 2020년 4월에 전년 대비 75% 줄었고, 연간으로도 립 제품 매출이 15% 감소했다. 실업률이 두 자릿수로 뛴 해였던 만큼 립스틱 지수대로라면 매출이 늘었어야 하는데 반대로 움직였다. 마스크 착용으로 입가가 가려지면서 그 수요가 아이 메이크업으로 옮겨간 것이 이유로 지목됐다.
이 현상을 실험으로 다룬 연구가 있다. 세라 힐을 비롯한 다섯 명의 연구진이 2012년 학술지 《성격 및 사회심리학 저널(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실은 논문인데, 불황을 떠올리게 하는 자극을 받은 집단에서 전자제품이나 생활용품을 사려는 마음은 줄어든 반면 외모를 가꾸는 제품에 대한 구매 욕구는 늘었다는 결과였다.
이 논문이 립스틱 지수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은데, 확인된 범위는 불황 인식이 지출의 배분을 바꾼다는 데까지다. 화장품 매출이 경기보다 앞서 움직인다거나 침체를 예고한다는 부분은 연구가 다루지 않았고, 실험 참가자가 밝힌 구매 의향과 시장에서 집계된 매출은 서로 다른 자료다.
측정 단위가 계속 바뀐다는 문제가 크다. 립 카테고리는 립스틱, 립글로스, 립틴트, 립오일, 립밤으로 갈라져 왔고 어디까지를 한 묶음으로 셀지가 집계 기관마다 다르다. 2008년에 립스틱이 줄고 파운데이션이 는 것이나 2020년에 립이 줄고 아이 메이크업이 는 것은 화장품 안에서 품목이 옮겨간 움직임이어서, 립스틱만 떼어내면 경기와 무관한 변동이 섞여 들어간다.
여러 해를 이어 붙인 시계열을 구하기도 어렵다. 화장품 판매 데이터는 서카나(옛 NPD) 같은 조사기관의 유료 자료이고 무료로 공개되는 것은 보도자료에 실린 요약 수치 정도라, 지수로 만들 만한 형태가 아니다.
최근 수치는 방향도 맞지 않는다. 서카나 집계로 2025년 미국 프레스티지 뷰티 소매 매출은 360억달러로 전년보다 4% 늘었고 메이크업도 4% 성장했는데, 립 제품은 프레스티지 메이크업에서 성장 기여가 가장 큰 품목이었다.
올해 수치도 같은 방향이다. 2026년 1분기 미국 뷰티 소매 매출은 프레스티지가 81억달러로 6%, 매스가 181억달러로 7% 늘었다. 메이크업은 두 채널 모두에서 가장 부진한 카테고리로 꼽혔고 수량 기준으로는 오히려 줄었는데, 그 안에서 립 트리트먼트와 립라이너는 금액과 수량이 함께 늘어난 상위 품목이었다. 서카나는 매스와 프레스티지가 비슷한 속도로 성장한 것이 5년 만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기간 미국 경제는 침체 국면이 아니었다. 2분기 실업률은 4.3% 안팎이었고 GDP 속보치는 연율 1.5% 증가였다. 립스틱 지수대로라면 이런 국면에서 립 매출은 줄었어야 한다.
화장품 판매 자료 자체는 소비를 볼 때 쓸모가 있는데, 가계가 지출을 줄이는 순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 확인할 것은 립스틱 한 품목이 아니라 객단가와 저가 브랜드의 비중이다.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 값이 싼 제품으로 옮겨가는 흐름이 나타나면 소비 여력이 줄었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립스틱 매출을 다룬 기사가 나올 때 함께 볼 자료는 소매판매와 가계 연체율처럼 지출을 직접 재는 통계다. 연체율 추이는 소비자 연체율에 정리돼 있고, 같은 계열의 비공식 지표는 비공식 지표 대시보드에서 함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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